본문 바로가기

잡다한

내 어릴 적 일기장.

   

  우연히 초등학교 1학년 때 썼던 일기장을 발견했다. 겉표지와 속지가 때로 인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시간의 흔적인 셈이다. 찬찬히 읽어봤는데, 1학년 때 쓴 일기라 두세 문장이면 일기가 끝나버렸다. 일기의 내용도 물론 단조로웠다. 예를 들자면, ‘재밌었다’, ‘보람찼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3종 세트로 일기는 항상 마무리되고 있었다.

 

  일기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들과 현재를 비교해보니 그때의 내가 평가절하한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로서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몰랐던 명경기! 한일전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도쿄 대첩에 관한 일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명 경기를 그저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오늘 한국과 일본이 붙었다. '서정원' 아저씨와 '이민성' 아저씨가 골을 넣어 일본을 21로 이겼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내가 특히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은 그때는 계셨지만 지금은 안 계신 한 아주머니에 대한 일기에서였다. 병마와 싸우시다 돌아가신 분인데, 그 아주머니에 대한 묘사가 일기에 남아있었다. 그때는 돌아가시지 않았는데, 지금은 돌아가셨다. 아주머니에 대한 1997년도의 기억은 아직도 일기장 속에 살아있는데, 지금은 계시지 않는다. 내 주위의 누군가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이 서글픈 사실을 다시금 깨우친다. 내 기록 속에서는 아름답게 살아 있는 어떤 사람과 현실에서는 이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씁쓸하다.

 

  일기장에 기록되어 있는 내 유년의 기억. 그 유년을 함께 했던 내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나를 기억하고는 있을까?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지금 어떠하든 간에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는 뜻일 텐데, 나는 그 어떤 누구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을까? 오랫동안 각인될 정도로, 그래서 지금의 나처럼 가끔 생각날 정도로 나는 그 어떤 누군가에게 가치 있는 사람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