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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글어글 프로젝트/단편영화 제작기

그래, 단편영화였어!

 

  친구 한 놈을 오랜만에 만났다. 육군 훈련소 동기인데, 영상에 있어 생각이 맞아 지금까지도 연락을 이어왔다. 목포에서 서울까지 긴 걸음을 하였다.

 

  친구가 술을 못하니 우리는 술 없는 다소 밋밋한 저녁 식사를 하면서 군대 이야기나, 여자친구 이야기를 했다. 물론 술기운이 없어서도 그랬겠지만 2년 만에 만난 친구이기에 대화의 소재가 딱히 많지는 않았다. 자칫하면 지루할 뻔했다는 소리다. 허나 웬걸, 공통의 관심사인 영상 이야기가 나오자 언제그랬냐는듯 대화의 분위기는 갑자기 고조되었다. 서로의 입은 그제야 터지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영상을 사랑하는 친구다. 군대에 있을 때 없는 시간 쪼개가며 두 편의 UCC를 만들 정도였다. 자신이 만든 UCC를 보여주었고 나도 화답으로 내가 2학년 때 친구들과 만들었던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었다. 문제의 발단은 여기서 발생한다. 친구가 단편영화를 하나 보여주겠다며 이름도 생소한 '윤성호 감독'[알고 보니 유명한 분이셨지만]의 단편영화 '두근두근 영춘권'을 보여주었는데... 순간 전율.

이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랑 너무도 일치하는 게 아닌가. 어안이 벙벙했다. 흥분한 나 그에 따라 흥분한 내 친구는 단편영화에 대한 얘기 또 단편 콘텐츠, 예를 들자면 웹툰과 같은 짧으면서도 임팩트 있는 스토리에 대해 아주 질리도록 이야기했다. 한 4시간 정도?

 

  창작집단을 만들고자 하는 나는 우리 집단의 방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창작집단은 우리의 존재이유, 그리고 무얼 찍을 것인가에 대해 논의 하면서 배우가 없다는 이유로 단편영화는 배제했었다. 허나 우리의 이 전제는 잘못되었다. 배우는 구하면 그만이었고, 인프라는 걱정 외로 잘 구축되어 있었다.

'필름메이커스'라는 사이트가 있다. 우리처럼 영화가 만들고 싶은 예비 영화인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인데, 여기서 우리는 배우를 구할 수가 있다! 물론 스텝도 구할 수 있다. 이런 호재가! 친구들에게 다짜고짜 단편영화를 만들자고 카톡을 보냈고 우리는 이 단편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할 예정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한계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것일까? 배우가 없다는 이유로 단편영화를 배제했어야 했나? 우리는 찾아보지도 않고 우리 스스로 창작의 폭을 줄여버렸다. 이야기 만드는 걸 좋아하면서도[창작집단 내에 친구 중 한 명은 육군에서 단편소설로 상을 탔다! 이 재능을 썩힐 텐가?] 한계사항에 그저 굴한 것이다. 앞으로 무수한 장애물이 있을 텐데... 그래도 무사히 첫 장애물은 넘은 느낌이다.  얘들아, 우리 땡기는 거 만들자! 그래, 이야기 만들자고!
 
  내 목포친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네 덕분에 잠깐 잊고 있었던 사실을 깨우쳤다. 그래, 나 만들고 싶은 거 만들게." 내년 여름 방학 중에 이 친구와 단편영화 하나 꼭 같이 만들자고 약속했는데, 벌써부터 든든하고 설렌다. 도원결의한 유비와 관우와 장비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그나저나 강맥주씨는 '청소년을 위한 영화 만들기'라는 책을 읽으며 이 잉여로운 시간을 이용해 단편 시나리오를 쓰려 한다. 지금은 소재를 찾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