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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글쓰기와 책읽기. 책읽기와 글쓰기.

 

 

  책을 읽을 때 해설은 잘 보지 않는 편이다. 보지 않을 때(그게 맞든 틀리든 간에) 창의적인 생각, 틀에 박히지 않은 생각이 나올 것 같다는 판단에서 그랬다. 이건 마치 신문 사설란을 읽을 때 생각이 한쪽으로 쏠릴 수 있다는 사람들의 말과 같은 원리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런데 카뮈의 소설 이방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등 세계적인 작가의 책들을 읽고서는 뭔가 생각이 달라졌다. ‘이방인을 읽을 당시, 다 읽었음에도 이해 가지 않는 것투성이고 도대체 쓸 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를 어째...

 

 

  그래서 처음으로 여러 곳에서 참고를 했다. 여러 블로그, 검색엔진, 책의 부록을 참고하고 작가, 배경, 중심사상 등을 연구했다. 그리고는 내가 단편적으로 느꼈던 사실들과 대조해 가면서 끝끝내는 리뷰를 완성해냈다. 이 과정 속에서 숨겨져 있던 내용을[의미를]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무언가를 알아야지 창의적인 생각도 나온다고. 더러운 비유지만 뭘 먹어야 똥이 나오는 것처럼 우리도 무언가를 알아야지 어떤 생각의 실마리를 계속 이어나가거나 넓힐 수 있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고. 창의적인 생각은 깊은 탐구와 오랜 시간을 요구하기에 우리는 넓게 세상을 배울 필요가 있겠다.

 

또 소설은[모든 책이 그렇겠지만] 작가의 의도를[말하려는 바를] 파악하는 일이 특히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시대, 그의 중심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필수다. 소설의 맥락을 이해해야 이 소설이 왜 쓰였고, 이 인물을 통해서 무얼 말하려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런 과정을 지나치는 소설 읽기는 사실 수박 겉핥기식밖에는 될 수 없다. 이런 과정을 지나치고 시간에 쫓겨 막(?) 쓰는 리뷰나 감상문은 내 그저 그런 감상을 말할 수는 있겠으나 절대 좋은 글, 좋은 감상이 될 수는 없다.

 

 

  책읽기와 리뷰쓰기를 이제 본격적으로 하기에 가치의 충돌이 상당히 많이 발생한다. 좋은 글을 쓰겠다는 의지에 실력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기에 그러리라. 갈 길이 참(!)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