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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내 장래희망은 창작.




  뭔가 만들어서 누군가를 놀래주는 일. 뭔가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 그래. 생각해 보면 나는 뭔가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가 제일 설렜다.


  중학교 때 나는 남들에게 내 미술작품이나 시를 보여주는 게 그렇게도 흥분되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국어 시간에 발표한, 자발적 의지로 만든 내 첫 번째 시 말이다. '푸른 하늘 새처럼'이라는 시였다. 시골에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쓴 시였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힘드실 때 푸른 하늘에 새처럼 날아가겠다.' 뭐 이런 시였다. 반 아이들 중에 유일하게 나만 발표했는데, 그때의 국어 선생님의 흡족한 표정을 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창작과 발표는 흥분 그리고 자부심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은 어떻게 보면 내 나름의 암흑기였던 것 같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아니 잊고 있었다는 말이 더 맞겠다.) 그저 게임이나 하다 허송세월을 보냈다. 사실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 나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대학을 잘 가는 것' 그뿐이었으니까. 시험성적에 반영되는 과목만 열심히 하면 그만이니 예체능 과목, 수능에 별로 도움되지 않을 것 같은 행위(암기 외의 행위들)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창작의 즐거움은 잊은 채) 남들과 똑같은 그저 그런 입시준비생으로 결국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교 1학년 때에는 그냥 막 놀았다. 주어진 자유를 마구 누렸다. 미친듯이 게임하고 술먹고 놀았다. 물론 이 시절이 후회되는 건 전혀 아니다. 미친듯이 놀았지만 내 삶을 지탱해줄 많은 추억거리와 우정을 남겼기 때문이다. 아, 내가 이 시절을 이야기 하는 것은 그저 노는 것 외에 나에 대한 탐구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추억은 많으나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시기. 


  그런 나에게 드디어 '터닝포인트'가 찾아온다. 1학년 겨울, 정확히 말하면 11월 학술제 시즌에 처음으로 동영상을 만들어 학우들에게 발표했다. 1년간 쌓아온 대학친구들과의 우정이 그저 노는 것에서만이 아닌 창작활동에서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반쪽인간'이라는 말도 안 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였는데(아는 사람이 나온다는 점에서 학우들이 후하게 웃어준 동영상이었다), 그 인연으로 우리는 영상의 세계에 푹 빠져버렸다. 그해 겨울 내내 우리는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학교에 나와 회의를 했고 누가 봐도 시시콜콜한 동영상을 만들면서 우리끼리 행복해했다. 아, 솔직히 말하자면 영상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음주 또한 즐거웠다! 나는 뭔가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창작의 즐거움을 이 시절 다시 기억해 낸 것이다.   


  대학생의 최종목표가 취업이라 그런 것일까? 나는 이런 창작의 즐거움을 앞으로도 계속 누리기 위해 '방송PD'라는 가시적인 목표를 세운다. 내가 동영상을 만들고 있었으니 그리고 내 전공이 신문방송학이다 보니 '방송PD'밖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군대에서 2년 남짓한 시간을 보낸 지금, 나는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무얼 좋아할까?, '방송PD'만이 진정 내가 원하는 길일까? 그러면서 어렴풋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의 범주 아니 본질을 찾아냈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사람들이 좋아할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건 동영상이 될 수도 있고, 글이 될 수도 있고, 사진이 될 수도 있고, 유형의 물질이 될 수도 있다. PD만이 내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PD는 내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이제 알게 되었다. 


  물론 지금 당장 해보고 싶은 일은 방송일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도 싶다. 창작이라는 대명제 아래에서 무언가에 국한되지 않은 채 많은 걸 시도해보고 싶다. 내 장래희망을 앞으로 '방송PD'가 아닌 '창작'이라고 써야 하는 것일까? :-)   

       

PS. 아, 생각해보면 내가 타인의 시선을 그렇게도 신경 쓰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 그건 내가 뭔가 시도하고 만들어내는 것에는 흥미를 느끼지만, 아직 사람들의 판단(비판)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미숙하단 거다. 나에게 혹여나 혹평이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그 걱정. 그래서 남들의 시선을 더 살피고, 내 개성을 보여주는 데에 두렵고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그 걱정을 조금씩 떨쳐가려고 노력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