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티어노'의 저서 '스토리텔링의 비밀(2008)' 에서는 로만 폴란스키의 작품, '악마의 씨' 를 뛰어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는 영화로 칭찬한다. 할리우드에선 꽤나 깐깐한 스토리 애널리스트인 '마이클 티어노' 그 자신도 "로즈마리(극 중 여주인공)가 악마의 자식을 갖는 씬은 다시 봐도 소름끼친다" 라고 말할 정도이다.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나도 결국은 이 말에 혹해 영화를 찾게 되었다.
'악마의 씨'는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 악마에 대한 이야기다. '배우인 남편이 자신의 직업적인 성공을 위해 아내를 악마에게 판다' 뭐 이런 식의 내용이다. '악마에게 무엇인가 팔고 대가를 얻는다?', 이런 줄거리는 이제는 신선하지 않다. 책에서나 다른 영화에서나 많이 다뤄져 왔으니까. 하지만 단순히 줄거리가 아닌 '악마를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라는 프레임으로 영화를 본다면 진짜 괜찮은 영화다. '악마의 씨'가 많은 사랑을 받고 또 높게 평가된 이유도 이 때문이지 않나 싶다.
감독은 악마를 드러내지 않는다. 로즈마리와 첫 대면을 하게 되는 그날 밤, 우리는 단지 그의 빨간 눈, 썩은 고목 같은 손 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제한된 샷에서 우리는 로즈마리와 악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포감을 가지고 이 장면에 집중하게 된다. '로즈마리'가 이 미친 상황에서 빨리 벗어났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악마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도 않는데 우리는 왜 이런 공포감을 느낄까?
이게 바로 서사의 힘이 아닌가 싶다. 감독은 악마의 모습을 최대한 자제하는 대신에 그 상황에 대한 판단은 암시로 남겨 놓는다(대사, 사운드, 의식을 진행하는 사람들, 또는 문양 같은 것들을 보면서 우리는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관객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그 암시에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가며, 로즈마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 실체, 그 상황에 대해 엄청 궁금해 하면서 한편으로는 두려워 하면서 말이다. 만약 이상한 분장을 한 악마가 나와 '로즈마리'와 끈적한 관계를 갖는 그런 몹쓸 장면을 실제로 보여준다고 생각해봐라. 어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보여주지 않는 것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하하
(출처- http://blog.naver.com/up8g2kr39?Redirect=Log&logNo=30105619476)
이런 서사는 기술력이 엄청난 지금의 상황에도 똑같이 중요하다. 화려한 영상 만으로 승부하다 알맹이가 없어 망하는 영화들을 수도 없이 보지 않나. 예나 지금이나 기본이 중요한가보다. '악마의 씨'가 여기 똑똑히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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