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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게'판

 

 

 

 

  집에 오니 판이었다. 식탁에 게 껍데기가 이리저리 내팽개쳐져 있었다. 다리는 다리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분리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게 뭉탱이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 나도 얼른 먹고 싶은 마음에 판에 합류했다.

 

  ‘포항이라고 쓰여 있는 스티로폼을 여니 게들이 살아있었다. 이놈들도 여간 먼 길은 온 게 아닐 텐데 동정하면서도 손은 이미 물을 데우고 있었다. 그리고 게를 투척했다. 아차. 게들이 살아있었지? 뜨거운 물에 고통스러워하는 게들의 모습이 보였다. 난 마음이 약해져 5분간 자리를 피했다. 게는 그렇게 장렬히 익었다. 8, 7, 6나는 차근차근 게 다리를 질겅질겅 씹어 나갔다. 그때, 아버지가 지나가시면서 한 말씀 하셨다.

 

 

너 왜 게 그렇게 먹냐?”

뭐가요?”

아니, 가위로 이렇게, 어 이렇게 해서 먹어야지. 이리 줘봐. 아빠가 먹는 법 알려줄게.”

, 됐어요. 그냥 내가 먹을게요.”

그렇게 먹는 게 아니라고. 이렇게. , 이렇게 말이야 인마.”

, 나도 알아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

 

 

  게를 먹는 방법을 가지고 부자간 소란이 생겼다. 게 다리를 껍질 채 씹어 먹는 내 모습이 아버지의 눈에는 못마땅하셨던 것이다. 게 먹는 방법? 물론 나도 안다. 가위로 게의 다리를 절개해서 밖으로 쏙 밀어내면 게살이 게맛살처럼 튀어나오는 거 나도 안다. 다만, 나는 그냥 껍질째로 씹어 내 턱의 압력에 의해 삐죽 튀어나오는 살이, 그 감촉이 더 좋을 뿐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내 방식에 야유를 보내시는 것이었다. 흑...

 

  게를 씹으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왜 아버지는 나에게 당신의 방식을 고집하셨던 걸까?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대강 2가지로 요약됐다. 첫째, ‘경제성이다. 나처럼 게를 씹어 먹으면 분명 못 먹는 살이 생기기 마련이다. 껍질과 살이 입속에서 섞여 완벽하게 분리되지 않는 까닭이다. 아버지 입장에서 그건 분명 음식 낭비인 것이다. 둘째, ‘심미성이다. 껌처럼 씹으면서 살을 발라 먹는 내 방식은 후처리가 조금 거시기하다. 뭔가 씹다 뱉은, 조금은 거북한 형태의 게 껍질이 배출되기 때문이다. 평소 깔끔한 성격의 아버지시다. 나의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방법을 그냥 넘어가실 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첫째, 똑같이 경제성이다. 게를 일일이 가위로 잘라 살만 발라 먹다보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먹기 참 번거롭다. 가위에 손이 찔리기도 한다. 차라리 씹어서 먹어버리면, 시간도 아끼고 좋다. 이렇게 글 쓸 시간도 벌 수 있다. 둘째, 또 똑같이 심미성이다. 게를 먹어보면 알겠지만, 게의 껍데기는 어차피 쓰레기가 된다. 껍데기가 수북이 쌓여있는 모습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말 그대로 판이다. 내가 껍질째 씹고 거시기를 뱉는다고 해서 미관상 크게 나빠질 건 없다.

 

  그래서 이 찌질하고 쓸데없는 논쟁의 결론이 뭐냐고? ‘만이라도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싶다. 게를 먹는 세간의 형식적 틀을 벗어나 내 방식대로 먹고 싶다. 내가 콜라에 밥을 말아 먹는 특이 취향을 가진 것도 아니니 조금은 너그러이 이해해주십사 읍소해보고 싶지만, 우리 아버지께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걸 알기에 조용히 글이나 남기고 있다. 식탁 위에 쌓여있는 게 껍데기들이 참으로 판이다.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supia9889?Redirect=Log&logNo=150125693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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