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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감상

다시 보는 영화, 도가니(2011)




  오랜만에 영화를 본다는 설렘이 채 가시기도 전에 스크린 속 안개가 자욱한 터널을 걷던 한 아이는 기차에 치여 죽는다. 우리는 그 아이가 누구인지 모른다. 다만 그 장면에 충격적일 뿐이다. 영화는 그렇게 초반부터 어둡다. 강인호(공유)가 터널을 빠져나와 '무진시'를 바라본다. 안개는 자신의 세상을 감싸 낯선 이의 접근을 금지하고 있다. 앞으로 벌어질 슬픈 진실 속으로 강인호가 첫 발걸음을 뗀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그 목적을 정확히 일러둔다.



 "믿을 수 없지만, 한 청각장애인학교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입니다. 2000년부터 5년간 청각장애아를 상대로 교장과 교사들이 비인간적인 성폭력과 학대를 저질렀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이야기는 진실입니다. 이제 이 끔찍한 진실을 마주해야 할 시간입니다."



  고발성 강한 이 영화는 가해자를 숨기지 않는다. 초반부터 그들의 더러운 모습, 잔인한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무엇으로도 용서할 수 없는 성폭행, 전관예우(전직 판사 또는 검사가 변호사로 개업하여 처음 맡은 소송에 대해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특혜), 정부의 일 떠넘기기 식 시스템 등 영화는 쉴새 없이 고발한다.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묘사는 사실적이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할 수 있듯 권력의 논리대로 흘러간다. 아이를 그것도 장애우를 성폭행한 학교 관계자들은 고작 6개월, 1년의 징역을 살 뿐이다. '강자'의 승리에 기여한 사람들도 한 몫 단단히 챙긴다. 제일 미치는 사실은 늙고 병든 아이들의 부모가 자식의 성폭행 사건에 돈 몇 푼으로 합의한다는 사실이다. 씁쓸하다.



  강인호(공유)의 인간적인 고뇌에 많이 공감했다. '강자'는 강인호(공유)의 가장 아픈 상처를 비집고 들어와 현실에 타협하라고 요구한다. '딸이 많이 아픈걸로 아는데...' 강인호는 아픈 딸, 전세방을 빼면서까지 마련한 직장 그리고 슬픈 진실 사이에서 고뇌한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정의감에 불타올랐다. 강인호가 박보현 선생(가해자 중 한 명)의 머리에 난초를 박는 그 장면에, 그 용기에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웃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성폭행'이라는 묘사에 어린 연기자들이 상처받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베테랑 배우들도 노골적인 장면을 찍고 나면 후유증이 남는다고들 말하는데, 어린 연기자들이 '성폭행' 장면을 연기의 경험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표현의 당위 아래 아이들에게 많은 짐을 지게 한 것은 아닌가 싶다. 부디 아역배우들을 배려하면서 촬영한 영화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