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모든 것의 감상

사회를, 나를 돌아본다 - 김훈의 남한산성



남한산성

저자
김훈 지음
출판사
학고재 | 2007-04-1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그해 겨울, 47일 동안 성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칼의 노래...
가격비교



  이순신 장군에 관심이 많아 '김훈'의 <칼의 노래>라는 책을 찾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해석된 건조 무미한 이순이 아닌 인간 이순신이 묘사된 책이었기에 두고두고 기억에 많이 남았다. 그러고 한동안 김훈을 잊고 있었는데, <책은 도끼다>라는 책이 다시 김훈과의 인연을 맺어주었다. '박웅현' 씨도 김훈의 글에 감명을 많이 받았는지 한 섹션을 내어 김훈의 글을 소개해주었는데, 그 글에 자극받아 김훈의 소설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이렇게 접하게 된 소설이 김훈의 또 다른 역사소설, <남한산성>이다.



김훈의 칼의 노래 인간 이순신!



  누군가에게는 소풍으로, 누군가에게는 데이트 장소로 기억되기 쉬운 남한산성에서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난다. 물밀 듯이 내려오는 청의 군사를 막지 못한 임금은 강화로 피하려다 길이 막히는 바람에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소설 남한산성은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청에 항쟁하다 결국은 칸의 조칙을 받고 삼전도에서 굴욕을 당하는 때를 이야기한다. 그 항쟁의 기간이 살을 에는 겨울이기에 겨울에 대한 묘사, 추위에 대한 묘사는 갑이다. 거기에 없는 대로 버텨야 하는 상황이 겹치면서, 성 안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그 상황 속에서 버티어 내는 백성의 모습, 조정의 모습은 무참하다.

 



 

  대부분의 역사소설이[내가 읽었던 역사소설이] 역사라는 이벤트에 초점을 맞춰 사건 위주의 소설 또는 주인공을 영웅화하는 소설이었는데, 김훈의 역사소설은 주인공들의 내면 이야기가 많았다. 역사에 대면한 나약한 인간으로서, 그들의 내면이 솔직하게 인간적으로 표현되었다. 남한산성도 그러했다. 겉으로는 척화를 주장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화친도 생각하고 있는 관리들의 이중적인 모습.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능한 임금의 모습. 싸우지도 않을 거면서 죽어도 쉽게 화친은 하지 않는 조선의 속내가 무진장 궁금한 칸의 모습 등. 여러분은 임금이 우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내가 본 왕들은 그렇게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허나 소설 남한산성의 인조는 마음이 여리다. 그래서 눈물이 많다. 인간적이어서 마음 가는 왕이었다.

 

 

  전쟁이 발발하고 임금이 성 안에 갇히면서, 조정에서는 청과 주화냐 척화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끊이질 않는다. 척화를 대표하는 인물 김상헌과 주화를 대표하는 인물 최명길의 대화가 흥미진진하다. 여기서 드는 생각. 만약 내가 조정 관리였다면 나는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 척화를 선택한다는 것은 곧 죽을 각오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적에게 항복할 바에야 죽고 말겠다는 것이다. 임금이 주화를 선택하자 김상헌은 과감히 목을 매어 자살하려 한다. 이런 비장한 각오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척화신이다. 소설 속에서 대다수의 관리들은 척화를 주장한다. 주화를 주장한다는 것은 역적을 의미하며, 집안 망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대다수의 관리가 겉으로는 척화를 주장하면서 속으로는 살고 싶은 욕구, 를 원한다는 것이다. 임금은 청과의 를 결정하고 칸의 요구대로 척화신을 색출해 칸에게 보내야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임금은 강제로 보낼 수는 없으니 지원자에 한에서만 보내겠다고 말한다. 그 많은 신료 중에 몇 명이 척화신으로 목숨을 바쳤을까? 2명이었다. 그렇게도 척화를 주장하던 대다수의 신료는 결정적인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눈칫밥과 묻혀가기. 수많은 신료는 주화를 주장하는 최명길을 목 벨 것을 임금에게 수도 없이 요구한다. 를 겉으로 주장함은 공공의 적을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눈칫밥] 그렇기에 신료들은 눈치를 본다. 살고 싶다는 생각을 숨기고 척화라는 기류에 조용히 편승한다. [묻혀가기] 겉으로 척화를 주장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아마 대다수 인간이 그러하지 않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용기가 없다. 우리 사회만 봐도 그렇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세상은 소수의 목소리에 의해 돌아간다. 많은 사람들은 침묵한다. 말 한 번 잘못했다 공공의 적이 될까 봐 조용히 대세에 묻혀간다. 말까지 탄압하는 공포 정치 속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사람들은 더욱 꿀 먹은 벙어리가 될 테다. 그래서 독립투사가 대단한 거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의에 침묵할 때 그들은 목숨을 내 놓은 사람들이니까. 찌질한 고백을 하겠다. 나는 솔직히 침묵했을 것 같다. 나는 죽는 게 너무 무서운 일반 사람이기에, 살고 싶은 욕구 앞에 자존심 한 번 꾹 참았을 것 같다. 에휴.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자. 죽음을 전제한 비굴함이다. 죽음만 아니라면 불의에 반해 열심히 싸우겠다! 말하고도 민망하다.

 

  

  서날쇠라는 인물이 있다. 성 내의 대장장이인데 지혜로운 인물이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조정은 말뿐인 방법, 왕의 체통이 어쩌니, 종친이 어쩌니, 품계가 낮다니 등 일의 해결에는 도움도 되지 않는 탁상공론에 몰두한다. 축구는 못하는데 입으로만 축구 경기를 하는 애들을 입구라고 한다든가? 싸움은 잘 못하면서 입으로만 잘 싸우는 애들을 아가리 파이터라고 한다든가? 조정 신료들의 모습이 딱 그렇다. 허위만 있고 실속은 없다. 반대로 서날쇠는 삶으로서 체득한 지혜로 많은 문제를 해결한다. 문외한이지만 그의 삶으로부터 체득된 지혜와 경험은 중요한 순간마다 번뜩인다. 조정 신료들이 아무도 행하지 못한 밀사의 역할도 서날쇠는 성공적으로 완수해낸다. 서날쇠의 능력. 학문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감각. 이게 삶의 지혜다. 몸과 경험으로 부딪히지 않으면 절대 얻을 수 없는 가치다.



우리 대학생들의 최고 화두는 취업이다. 스펙이니 뭐니 하면서 학점 따랴 외부 활동하랴 난리다. 제대하면 나 또한 예외는 아닐 거. 학점, 상식, 자격증, 어학 등등[요구하는 게 엄청나다!]. 자신의 직종에 필요한 전문지식, 사회인으로서의 기본적 교양은 뭐 당연히 필요하겠다. 그 분야에 대한 기초도 없이 업무를 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 몰두하면서 우리는 어떤 점을 보지 못하고 있다. 즉 이론적 배움에 몰두하면서 몸으로, 경험으로 체득할 수 있는 삶의 지혜는 놓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지식. 누구나가 다 공부 좀 하면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막상 취직하면 업무는 다시 배운다고 한다. 지식은 그저 기초에 불과한 것이다. 업무는 우리가 직접 행하는 것인데, 어디 기초만 있다고, 지식만 있다고 업무가 능숙해지던가? 매도 맞아 본 놈이 잘 맞는다고, 이것저것 많은 것을 경험했던 놈이 업무도 금방 배우고 거기서 확장도 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너무 근시안으로 살지 말자. 취업 통과한다고 우리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 공부는 잘하지만 센스는 빵점인 '허똑똑이'가 되고 싶지는 않다.[요즘은 공부만 할 줄 아는 사람들, 경험이 없는 사람들, 개성이 없는 사람들은 심사위원이 알아서 거른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위에서 말하는 바는 뭐 이미 엄청(!) 식상한 주장이겠다. 허나 아직까지도 시대를 역행하는 자들이 존재하기는 한다. 이것 저것 하지 말고 그저 공부에나 올인 하란다. 음. 한 마디 붙이자면, 너나 그렇게 하세요.]   




 

  미국의 영화 평론가 '유진 시스켈'은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같은 영화를 두 번 볼 것, 영화에 대한 글을 쓸 것, 영화를 직접 찍을 것. 나는 이 말이 책에도 통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사랑하면, 같은 책을 두 번 보고, 책에 대한 글을 쓰고, 책을 직접 쓰면 된다. 책을 직접 쓰기에는 내 능력이 너무 미진하므로, 나는 세 가지 중 두 가지를 실천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간단하다. 책을 두 번 읽고 그에 대한 리뷰를 쓰는 것이다나는 김훈의 소설을 두 권 정도 읽었다.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이다. 그리고 오늘 리뷰를 쓴 남한산성은 두 번 읽었다. 이렇게 글로 남기기까지 하니 나는 적어도 김훈의 책들을 사랑하고 있는 셈이다. 조만간 <현의 노래>를 읽을 예정이다.



사진출처 :

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3&aid=0000012432

2. http://cafe.naver.com/sanak2009/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