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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감상

알랭드 보통, 불안 - 형식의 아쉬움

 

  

 

역시 중요한 점은 모두 함께 경험하는 일상적 삶, 어찌 보면 뻔하고 진부한 그 생활이 그의 사색의 회로를 통과하고 나면 왠지 낯설고 새롭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의 이전에 나온 책들에서 경험했던 바이며, 이 점은 이번 책에서도 변함이 없다.

 

  역자 '정영목'씨의 <불안>에 대한 평이다. 개인적으로 반은 공감할 수 있고, 반은 공감할 수 없는 말이다. 내가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고 환호하던 이유는 역자의 표현대로 무의미함의 반복이라고 생각되는 나의 일상에서 낯설고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반면, 내가 이번 작에 공감할 수 없었던 이유는 전작들과는 다른 전개방식 때문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여행의 기술> 등, 내가 읽었던 보통의 전작들은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특이하지 않은 한 캐릭터가 사랑, 여행과 같은 주제와 관련해 무언가를 깨닫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그런데 이번 <불안>은 에세이, 철학서, 방대한 역사서의 형태였다. 물론 형식이 달라졌다고 불만을 품은 것은 아니다. 다만, 형식이 변화하면서 보통의 통찰의 전달력(파괴력)이 줄어들지는 않았나 의문을 품게 되었다.

 

  보통의 책이 파괴력이 있다고 느꼈던 이유는 소설의 캐릭터와 나를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자연스러운 깨달음 때문이었다. 내가 느꼈던 감정, 내가 하던 실수를 보통의 캐릭터가 똑같이 반복하고 치유해가는 과정에서 나의 감정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었음은 물론 지구상에서 나만 특별한 사람이라는 독단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고 캐릭터를 중심에 세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통에게 설득(?)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불안에서는 그런 캐릭터란 요소가 없다 보니 그저 보통이 하고 싶은 말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느낌이었다. 위트 있고 짜임새 있게 느껴졌던 그의 철학적 사유가 이번에는 오히려 너무 어렵고 난해하게 다가왔다. 차라리 저번 작들처럼 <불안>의 주된 이야깃거리인 '지위'와 '사회생활'이라는 요소로 소설을 썼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소설의 형식이 그의 위트와 생각을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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