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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참을 수 없는 역사의 가벼움 -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서대문 형무소,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외할머니댁 바로 근처였다. 여러 블로그의 사진을 보면서 가 봐야지 가 봐야지 하던 게 몇 달인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드디어 가게 되었다




  

  서대문 형무소. 입구에서부터 참 긴장하고 들어갔다. 아니 긴장이라기보다는 공포라는 단어가 더 맞는 것 같다. 어릴 때 경찰차 보고 지레 겁먹어 숨었듯이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공포에 질려 들어갔다. 내가 제일 관심 있는 역사 분야가 일제시대인데 그 억압과 폭력의 끝이 서대문형무소였기에 그랬으리라.





  문화재 보존 차 리모델링을 했기에 내부는 상당히 깔끔했다. 모든 것이 구획 별로 잘 관리되어 있어 깔끔한 공원 느낌이 났다. 방문객을 위해서 관람 코스를 지정해 놓았는데 그 덕분에 관람은 상당히 편리했다.





 


  내부에는 일제 강점기의 발단부터 광복까지의 흐름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역사교육을 위해 아이를 대동한 부모가 상당히 많았다. 고문 기구, 고문 장면, 역사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몇몇은 방문객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개방해 놓았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이런 문구가 있다.


 

  역사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 피투성이 세월조차도 그저 말뿐, 새털보다 가벼운 이론과 토론에 불과해서 누구에게도 겁을 주지 못한다. 석양으로 오렌지빛을 띤 구름은 모든 것을 향수의 매력으로 빛나게 한다. 단두대조차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0pg)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역사란 한 번 지나가 버리면 끝인, 인간의 인생과 별다른 바 없는 가벼운 것이어서 나는 공포와 억압 그 자체였던 공간, 서대문 형무소를 향수에 젖은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이 겪었을 고문을 묘사한 모형이나 고문도구를 보면서 고통의 상상에 몸서리치기는 했지만, 나의 경험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마땅히 존경해야 할 분들의 고통이 잠들어 있는 곳이지만 나는 그저 구경하며 사진을 찍을 뿐이었다. 지금은 그 어떤 고통도 슬픔도 존재하지 않는 평화로운 그곳은 서대문 형무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