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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감상

김훈의 칼의 노래 - 인간 이순신!



 

 

  내 몸의 깊은 곳에서,아마도 내가 알 수 없는 뼛 속의 심연에서, 징징징, 칼이 울어대는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칼의 노래 中)

 

 

  '칼의 노래' 란 이순신 내면의 울림이다. 전쟁이란 난세 속에서 이순신은 그 참혹함에, 그 알 수 없는 적의에 치를 떤다. 그럴 때 마다 그의 가슴 속에서 칼은 '징징징' 소리를 내며 운다. '칼의 노래' 란 제목에서, 작가는 이 소설이 이순신 내면의 모습을 숨김 없이 보여줄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다.

 

 

  '칼의 노래' 는 이순신이 백의종군 했다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노량해전에서 죽음을 맞을 때 까지의(정유재란) 시기를 이야기 한다. 그 시기에 이순신이 느끼는 임금과 조정에 대한 생각, 전쟁을 준비하며 느끼는 막막함, 적에 대해 느끼는 분노의 감정, 그리운 것들에 대한 슬픔 등이 주된 내용으로 시간 순으로 나열된다.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무의미를 감당해 낼 수 없었다.(중략)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 적의 적으로서 죽는 내죽음의 자리에 내 무와 충이 소멸해 주기를 나는 바랐다.(칼의 노래 中)

 

 

  백의 종군 당한 이순신은 동인과 서인이 뒤 엉켜 엉망인 조정에, 그 속에서 누군가를 계속 희생함으로써 사직을 보존하려는 선조에 자신의 목숨을 받치려 하지 않는다. 그런 죽음은 그에게 '무의미' 를 뜻한다. 그는 정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다만 장군으로서의 소명을 다 할 뿐이다. 부제에 쓰인 '이순신- 그 한 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가 이를 뜻하는 듯 하다.

 

 

  어느 날, 적들이 모두 떠나버린 빈 광양만 바다의 적막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 견딜 수 없는 적막보다는 임금의 칼에 죽는 편이 오히려 아늑할 듯싶었다. 적들이 홀연 스스로 빠져나간 그 빈 바다의 텅빈 공간, 적이 안개처럼 스스로 물러가서 더 이상 아무런 조준점도 내 앞에 남아 있지 않는 그 빈 바다를 상상할 수 없었다.(칼의 노래 中)

 

 

  1592년~1598년까지 '왜'가 백성에게 저지른 짓은 참혹했고, 이순신은 전쟁의 최 전방에 서서 그 모든 것을 보며 뼈에 새겼을 것이다. 그의 아들 '이면' 이 '왜군'에 의해 죽었을 때도 그는 지켜줄 수 없었다. 그는 더 많은 목숨을 지켜내기 위해, 대의를 위해 소의에 흔들려서는 안 될 조선 수군의 우두머리였기 때문이다. '왜'를 돌려보낸다는 것, 그것은 이순신 스스로에 대한 배반이다. 노을 지는 바닷가, 그 한편에 자리잡은 초라한 소금창고에서 숨죽여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순신의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칼의 노래'에는 후각적인 묘사가 아름답다. 어린 '이면'의 푸른 똥에서 나는 젖 냄새, 가엾은 여인 '여진'의 가랑이 사이에서 나는 젖 국 냄새, 어머니 품에서 나는 오래된 아궁이 냄새 그리고 전쟁 중의 화약냄새... 그리운 것들의 냄새가 현재(전쟁 중)의 화약냄새와 어울리면서 이순신 내면의 그리움이 더욱 부각되는 듯 하다.

 

 

 

一揮掃蕩 血染山河 (일휘소탕 혈염산하)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함이 그의 검 속에 고이 잠들어 있다.

 

'징징징' , 칼의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