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영화인지, 줄거리가 무언지도 모른 채 단지 평점하나만으로 선택한 영화였다. 평점 보고 영화를 선택하지는 않지만 무려 9점대니 자연스레 끌릴 수밖에 없었다. 짐캐리,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등 호화로운 캐스팅의 영화였는데, 그들을 지휘하는 감독이 도대체 누군지 봤더니 ‘미셸 공드리’였다. ‘봉준호’ 감독이 참여한 영화로 유명한 ‘도쿄’에서 한 파트를 담당했던 감독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의 단독작품을 감상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도쿄’에서도 인상 깊은 연출로 어렴풋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터널 션사인’을 보고 나서는 그의 영화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다.
연인과 이별했을 때 누구나 함께 했던 기억 때문에 슬퍼하고 아파한다. 공드리는 여기에 의문을 던진다.
“이별 한 후 전 연인과의 기억을 삭제하면 어떻게 될까?, 기억을 삭제하면 그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이런 엉뚱한 생각은 영화 속에서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 라쿠나 주식회사로 구체화 되는데, 결말을 따라가다 보면 알 수 있듯 이 질문에 대한 감독의 대답은 ‘No’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의 기억은 요상한 기계를 통해 지워졌지만 사랑하는 마음까지 지워진 것은 아니었다. 짐캐리와 윈슬렛은 다시 만나 똑같이 사랑에 빠지고, 던스트 또한 극 중 하워드 박사를 다시 사랑하게 된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옛 사랑의 기억을 완벽하게 지웠건만, 사랑이 어찌 뇌로 하던 것인가? 가슴은 기억하고 그 사람과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상대방과 영원히 이별하는 방법, 아쉽게도 그저 마음에서 멀어지는 방법 밖에는 없다. 시간을 갖고 고통을 감내하는 그 방법 밖에는 없다는 말이다. 말처럼 쉽지 않으니 이런 독특한 발상이 나왔겠지만... 영화의 제목, 해석하자면 ‘영원한 햇살’(?)처럼 상대방에 대한 마음이 아직 따뜻하다면 그대의 사랑은 유효하다.
기억이 지워지는 과정을 어떻게 묘사할까? 공드리에게는 상당한 난제였을 것이다. 아마 그의 상상력 밖에는 해답이 없었을 것이다. 그 누가 기억이 사라지는 비가시적인 현상을 쉽게 가시화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스크린 속에서 짐캐리의 기억이 사라지는 장면들은 기괴하고 난해했다. 시간과 공간이 무너지고 현실과 가상이 구별이 가지 않았다. 이는 오로지 공드리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세상, ‘공드리 월드‘였으리라. ’도쿄‘에서도 주인공이 의자로 변해가는 모습은 압권이었는데, 자기만의 색깔이 참으로 짙은 감독이다.
요즘 한 배우, 한 감독의 작품만을 파보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외골수’라 부른다고 하던데, 뭐 그 ‘외골수‘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한 배우, 한 감독의 외골수가 됨으로서 그들에 대한 풍부한 대화소재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즐거운 생각을 해보고 있다. 배우로는 ’케이트 윈슬렛‘을, 오랫동안 공석이던 감독에는 ’미셀 공드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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