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신문방송학이라는 제 전공의 큰 틀(기초)이기도 한 이 학문을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더더욱 잘 모릅니다. 그저 미디어 관련 이론을 배우면 제시된 사회현상을 해석해 에세이 쓰는 정도가 다였습니다. 하지만 이론을 가지고 비슷비슷한 사회현상에 비추어 보는 것은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동적이기도 하구요. 또 사회현상이 그렇게 고정되어 있던가요? 제가 원하는 것은 공식과 같은 단순한 대입이 아닌, ‘어떻게 사회를 좀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이슈를 보고 내 의사를 개진할 수 있을까?’ 등의 자발적인 활동이었습니다.
우석훈 선생님. 대학생들의 필독서(?)쯤으로 알려진 ‘88만원 세대’의 저자이신데, 참 유명하신 분입니다. 책 안 읽던 저도 대학 다니면서 우석훈 선생님의 책을 읽어보라고 여럿 권유받았을 정도니까요. 요즘 총선 때문에 인터넷에서도 쉽게 선생님의 이름을 볼 수 있는데, 이름의 낯익음도 책을 보는 데에 한몫한 것 같습니다.
사회과학이 뭘까. 간단한 것 같은데 말 문 막히는 질문입니다. 이 책의 맨 앞의 초대장을 인용하자면(또 최대한 쉽게 말하자면) ‘사회에 현상이 존재한다!’ 쯤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에 현상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알 것인가!’가 사회과학 방법론입니다. 사회현상을 인식하는 수단인 셈입니다. 우석훈 선생님은 책을 통해 ‘사회과학’ 과 ‘방법론’에 대해 철학적으로 설명을 해주셨는데 여기서는 패스하겠습니다. 너무 어려우면 재미없잖아요.
우석훈 선생님은 사회과학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다양한 예를 통해 설명합니다. 우리가 사회과학 하면 여러 이론, 수치 등을 떠올려 생각만으로도 질려버리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회과학 도서치고는 부담스럽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뭐 간혹 학자들의 이름이나, 학파가 나오면 본능적으로 쫄기는 하지만요. 그렇다고 철학적 용어, 전문용어가 아예 들어가지 않는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사회과학 개론서(?) 쯤은 되는 책이니까요. 한 현상이 있으면 이를 둘러싼 입장들을 설명해주는데, 그걸 좀 쉽게 설명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선생님은 현상을 이해하는 방법론을 설명하지만, 그 설명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한국 사회를 들여다봅니다. 다양한 렌즈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생물을 관찰하는 것이죠. 한국사회의 문제들, 예를 들면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려는 경제 근본주의, 공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토건 주의 등을 해석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몇 가지 공감 가는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우리 사회는 전문가를 많이 양성해 왔습니다. 의학 전문가, 법학 전문가, 경제 전문가 등. 전문가는 말 그대로 자신의 전문 분야에는 굉장히 해박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빌리자면 학문의 ‘분화’가 전문가의 양성에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사회가 너무 복잡해져 개인이 모든 것을 알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학문을 나눌 필요가 생기게 됐다는 것이죠.
하지만 복잡한 사회가 한 가지 방향으로만 설명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전문가들이 서로 교류해 좀 더 복합적으로 사회를 연구해야 하는데 문제점이 발생하게 됩니다. 교류를 연결해 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각자의 분야에만 너무 충실했기에, 다른 분야는 거의 알지 못합니다.
여기서 얇지만 광범위하게 아는 사람이 필요하게 됩니다. 선생님은 이를 ‘백과사전형 지식(인)‘ 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의 역할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게 공유점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기획자‘라고도 불리는 그들은 누가 뭘 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되고 싶은 언론인이 여기에 속합니다. 언론인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사회의 문제를 직접 지적하기도 하지만, 공개토론 같은 프로그램을 기획해 전문가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는 학문의 교류는 물론 국민의 알권리도 백번(!) 충족시켜줍니다.
언론고시 관련 사이트나, 각종 취업 블로그를 들어가 보면 많은 사람이 ‘언론인은 무조건 많이 알아야 한다’라고 조언합니다. 앞뒤 다 자르고 결론만 말한다면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왜 많이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알고 있을까요? 왜 다양한 학문의 개론서를 많이 봐야 하는지 알고 있을까요? 저는 왜 제가 다양한 분야를 알고 있어야 하는지를 이제는 조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 4대강 사업에 대한 예리한 비판도 재미있습니다. 시간의 비가역성. 즉 시간이란 돌릴 수 없는 것이라는 속성을 이용해 4대강 사업을 살펴보았는데, 정부의 논리가 참으로 꼴사납습니다.
정부는 항상 4대강 사업을 중단하라는 말에 ‘우리는 이미 시작했다, 돈이 들어간 이상 돌릴 수 없다’ 는 식으로 반문합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을 진행함으로써 잃을 수 있는 미래의 손해가 더 크다면? 당연히 공사를 중지하는 게 이익 아닐까요? 미래에 손해인 사업을 하는 경제논리가 어디 있던가요. 정부는 중지함으로써 지게 될 책임이 무서운가 봅니다. ‘행정에는 실패가 없다’라는 말이 참 와 닿습니다.
-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깨우칠 때도 있었습니다. ‘6조 혜능’이 말한 ‘돈오’라고나 할까요. 우리는 은행에 돈을 맡겨 이자를 받는 것을 당연한 이치로 생각합니다. 각종 저축상품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시간이 지나면 돈이 불어난다는데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하지만 ‘이자’라는 게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현상이라고 합니다. 저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중세에는 이자라는 게 종교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으며 중국에는 돈을 맡기면 오히려 보관료를 받는 은행도 있다고 하네요.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에 ‘이자’라는 것을 당연한 고정불변의 진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게 고정관념인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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